흥행성이 떨어진다?
현실을 반영한 영화가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이라 감탄했다.
이병헌이 최민식을 단죄하는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당해진' 범죄자에 대한 관객의 시선때문일 것이다.
과거 어느 기사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성폭행범이 형사들에게 연행되면서 형사들이 그 범죄자의 얼굴을 가려줬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사진 밑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범죄자의 인권을 위해 얼굴을 가린다고.
그렇다면 범죄자의 인권을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확하게 범죄자의 인권은 무엇을 말하는가?
범죄에 대한 죄값으로는 '너무 가벼운' 값을 지불하고 추후에 당당하게 사는 것이 인권일까?
아니면 우발적이라 그랬다며 그 죄값마저 감형하는 것이 인권일까?
사람들은 마치 범죄자의 인권과 동점심, 혹은-드라마를 너무 많이 쳐봐서인지-있지도 않았던 가상의 스토리를 끌어다가 범죄자의 형을 줄여주는게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행동에 대해, 추후에 있을 대가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마저 느끼지 않는다.
본래 범죄자의 인권이란 정당하게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와 재판을 받음에 있어서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한 것이다.
범죄자들은 정당하게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량을 이끌어 내고 법 앞에 평등해야 할 만민이 오히려-범죄를 저지르고도-우위에 서서 큰소리 칠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법이 더이상 만인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기준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나 하나 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양심마저 죽어버리고, 그것으로 인해 처벌받을 때 가지는 자책이나 겸허함 대신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범죄자를 취급함에 있어서 더 이상의 동정은 갖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범죄를 저질렀고 범법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남은 인생을 범죄자 취급당하며 산다고?
남은 인생을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사는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게 산단 말인가?
범죄자 취급 당하며 살기 때문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고?
범죄자 취급 당하면서도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호구란 말인가?
덧붙여서 재활프로그램이니 어쩌니 하지만 강력범죄자들이 갱생해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남은 인생을 타인에게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에게 정당한 교육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런 범죄를 저질렀겠느냐, 화목한 가정이 있었다면 범죄를 저질렀겠느냐 하는 식의 동정은 더이상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유럽에서는 죄를 저지르고 공정한 재판없이, 혹은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처벌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레 미제라블이 괜히 쓰여진 소설이 아니다.
그 이후 누구든 재판을 공정하게 받아야 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범죄자들도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게된 것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아는 범죄자들.
잘해줄때 자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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