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조
난세의 간웅, 치세의 능신.
조조의 평가는 굉장히 극단적이다.
과거, 그러니까 이문열 삼국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 전만 해도 '간사함'의 대명사였다.
왕조 시대에 용납되기 힘든 반역자였고, 황권을 철저하게 이용하며 자신의 이득을 챙겨가기까지 했다.
왕조 시대에 용납되기 힘든 반역자였고, 황권을 철저하게 이용하며 자신의 이득을 챙겨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이문열의 뛰어난 포장으로 인해능력을 중시하는 이상적인 군주의 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본인 역시 상당히 뛰어난 능력자로 평가된다.
실제로 조조의 리더쉽을 재조명하며 많은 책들이 출간되기도 했다.
실제로 조조의 리더쉽을 재조명하며 많은 책들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는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나타나는데, 게임 내에서도 몇 없는 모든 능력치가 90 중후반을 찍는 만능형 무장으로 나온다.
1. 과연 조조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조조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오해는 맨땅에서 시작해서 제국을 일궈냈다고 한다.
실제로 반동탁연합 이후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조조 가문의 위상을 살펴보았을 때, 결코 빈손으로 시작할 수 없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나오지만 조조의 할아버지는 조등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조조의 가문이 비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조등은 그 시대의 권력자 중 하나였다.
무려 6명의 황제를 섬겼으며, 외척 세력이 황제 옹립에 관여할 때 조등의 권력으로 외척의 계획을 저지시킨 인물이다.
이러한 가문 배경 덕택에 원소와는 달리어린 시절부터 탱자탱자 놀아제낀 조조는 스무살부터 무.난.하.게 관직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낙양 북문 경비대장 시절에 십상시의 친척을 처벌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삼공 중 한명이었던 왕윤은 이전에 조조와 비슷한 짓을 했다가 십상시에게 보복을 받고 죽을 뻔 했다.
또한 반동탁연합에 참여할 당시만해도 무려 5천여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탁이 낙양에 불을 지르고 도망갈 때, 반동탁연합의 제후들은 추격을 하지 않았다.
조조는 자신의 독단으로 동탁을 추격하였으나, 오히려 동탁의 반격으로 5천의 병력이 궤멸하게 된다.
즉, 빈손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조조의 선택이었다.
오히려 그에게는 상당한 행운이 뒤따랐다.
그 당시 황건적에 의해 연주목이었던 유대가 죽게 되었고, 그에 따라 연주가 빈 땅이 되었다.
이때 유대의 부하인 포신과 진궁이 조조에게 연주를 갖다 바치고 조조는 연주를 거의 공짜로 차지하게 된다.
오히려 그에게는 상당한 행운이 뒤따랐다.
그 당시 황건적에 의해 연주목이었던 유대가 죽게 되었고, 그에 따라 연주가 빈 땅이 되었다.
이때 유대의 부하인 포신과 진궁이 조조에게 연주를 갖다 바치고 조조는 연주를 거의 공짜로 차지하게 된다.
그 당시 연주는 인구와 생산량이 높았던 지역 중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지역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봤을 때 조조는 결코 맨땅에서 시작한 인물이 아니다.
정말로 맨땅에서 시작한건 손견, 유비 둘 정도뿐이다.
정말로 맨땅에서 시작한건 손견, 유비 둘 정도뿐이다.
2. 서주 대학살
도겸의 병사들이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을 살해하자, 조조는 서주를 침공한다.
그러나 도겸이 지키는 서주를 공략하지 못하고 애꿏은 양민만 수십만을 학살한다.
그당시 물산이 풍부하고 인구만 100만 정도 된다고 기록된 서주가 황폐화 될 정도 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 였는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자식의 도리로 복수를 했다는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나, 양민의 수십만의 목숨 역시도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주를 황폐화 시킬 정도로 철처하게 파괴한 조조의 잔혹성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훗날의 일이기도 하며,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서주 대학살이 없었다면 오와의 전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원소
연의에서 그려진 원소의 이미지는 찌질 그 자체이다.
가문빨로 올라가서는 능력도 없고 결단력도 부족하고, 라이벌이라고 쓰고 천적이라고 읽는인 조조에게는 항상 몇 수씩 뒤쳐지고, 결국에는 자신이 일궈놨던 땅까지도 조조에게 통째로 빼앗기는 '조금 모자란' 인물로 비춰진다.
그런데 정말 원소가 그렇게 모자란 인물이었을까?
1. 원소는 가문빨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연의에서 캐릭터성을 부여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나관중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소에게 '사세삼공'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사세삼공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애매한게, 원소는 사생아이다.
그것도 어머니가 노예인 사생아.
연의에서는 사촌으로 나오는 원술이 적자출신의 배다른 형제이다.
즉, '사세삼공 가문'이라는 표현은 원소보다 원술에게 더 적합한 표현이다.
어찌되었든 원소는 가문에 입적되어 자라기는 하였지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이런 원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시류를 파악하고 소외되었던 청류파를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소가 청류파에 뒷작업을 했던 시기는 황건의 난이 일어나기 전이었는데, 황건난이 일어나며 과거 청류파 인사들의 수배가 풀리게 되었고, 이전부터 꾸준히 '작업'을 해온 원소는 이들을 대거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원소의 결단력에 대해서는 십상시가 하진을 죽였을 때 그 상황에 내렸던 판단을 들 수 있겠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환관세력에 선공을 가해 그 세력들을 축출해버린 것을 보면 결단력이 떨어지는 인물도 아니다.
정리하자면 원소는 오히려 상당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다.
2. 원소는 왜 황제를 옹립하지 않았을까?
하북을 평정하면서 가장 부유한 4주(기주, 유주, 병주, 청주)를 소유한 원소에게 저수가 낙양에 있는 황제를 옹립하라고 권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원소에 비해 세력이 비루한 조조는 황제를 옹립하고 그 세력이 점점 확장되었고, 두 세력이 충돌하게 된다.
이것은 관도대전이 일어나기 전, 조조와 원소의 상황이다.
그 당시 조조는 원소에 비하면 작은 세력에 불과했다.
여포, 원술, 도겸 등에게 치이며 연주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던 조조와는 달리 원소는 중원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4주를 통일한 제후였다.
그러나 황제를 옹립한 조조는 그것을 이용해 관리들을 자신의 세력 아래두어 결국에는 연주, 예주, 서주를 손에 넣고 관도에서 원소를 패퇴시키면서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이것을 보며 사람들은 원소가 참 무능력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원소는 왜 황제를 옹립하지 않았을까?
이미 원소는 처음부터 헌제를 황제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관동까지 올라온 제후들에게 동탁은 군대를 해산하라고 황제의 명으로 칙사를 보낸다.
그러나 원소를 그런 칙사를 죽여 볶음을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원소를 그런 칙사를 죽여 볶음을 만들어 버린다.(...)
엽기적인 행동이기도 행동이지만 원소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바로 헌제의 정통성을 문제로 들며 헌제는 황제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유인즉, 동탁은 전 황제(소제)를 살해한 역적임과 동시에 그 역적인 동탁에 의해 임명된 황제라는 점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황제를 추대했는데 황실 정통성에 가장 근접한 유우를 추대했으며, 많은 제후들이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이유인즉, 동탁은 전 황제(소제)를 살해한 역적임과 동시에 그 역적인 동탁에 의해 임명된 황제라는 점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황제를 추대했는데 황실 정통성에 가장 근접한 유우를 추대했으며, 많은 제후들이 그 의견에 동의했다.
결국 조조와 원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제후들이 원소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고 유우가 황제에 오르기 직전까지 계획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유우 본인이 완강하게 거절하며 결국 그 계획은 불발이 되고 어영부영하다 결국에는 반동탁연합을 해산하게 된다.
유우는 유우 나름대로 이렇게 사람들을 다스리면 헌제에게 충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후한의 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은 오히려 독이 되었고 결국 제후들의 군벌화를 가속시키며 군웅할거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원소만의 생각이었고, 여전히 한 황실을 따르는 인물들이 대다수였다는 점에서 원소의 결정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로 작용하였다.
3. 그외에는
그의 외모를 표현하길 자모위용, 빼어난 용모에 위엄이 서려있다고 표현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잘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에서 표현되는 걸 보면
남자답게 생기긴 했는데 자모위용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조조 생에 가장 큰 라이벌은 원소였다.
원소와 전쟁을 하기 전에도 원소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원소를 얼마나 의식하고 있었는지 무제기에서 원소를 언급한건 120여 회라고 한다.
조조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유비는 60여회, 손권은 20여회 정도 언급된다고 한다.
원소와 전쟁을 하기 전에도 원소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원소를 얼마나 의식하고 있었는지 무제기에서 원소를 언급한건 120여 회라고 한다.
조조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유비는 60여회, 손권은 20여회 정도 언급된다고 한다.
정리하면 정사에서 좆밥취급 당할 정도로 무능력한 인물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굉장히 과소평가받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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