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관우
신이 된 사나이명대에는 황제로까지 추대되었다.
소설의 내용을 현실에서 실행시킬 줄 아는 남자.
삼국지 최강의 무장.
지상 최강의 사나이한마 유지로.
어떤 표현을 써 붙여도 표현하기 참 부족하다.
관우를 잘 표현한 삼국지 12에 나오는 관우 일러스트이다.
관우에 대한 편견이지만 일러스트 역시도 관우의 얼굴은 붉은 대춧빛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붉은 빛이 감도는 까무잡잡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왜 불그스름한 얼굴이 되어버렸는지는 의문.
또한 유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소금 장사를 하다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다녔다고 하는 설이 있지만 이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1. 관우는 무결점 인간이었을까?
관우의 이미지 중 하나는 '뛰어난 학식'이다.이것은 '춘추좌씨전을 가지고 다니며 틈틈히 읽었다'는 것 때문에 학식이 굉장히 깊은, 마치 '사색하는 파이터'와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연의에서도 그런 이미지만들기에 일조한 부분이 있는데 도원결의 이전에 관우가 했던 일은 아이들을 가르쳤던 훈장이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관우가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춘추좌씨전 역시 그저 삶의 지침서 정도로 읽었을 뿐 학자의 눈으로 파고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위와 연관되어 나오는 것은 인품이 출중하고 성격 또한 조용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성격이 상당히 급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조조가 황제의 화살을 빼앗아 사냥감을 맞췄을 때,
또한 입촉 후 마초가 유비에게 방자하게 굴자 관우는 그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마초를 죽이려고 한다.
이런 점들을 보았을 때 실제 관우의 성격은 상당히 난폭했다.
연의에서는 군략에 밝아 뛰어난 지휘관으로 그려지지만, 이것마저도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지휘관으로써는 승보다 패가 훨씬 많은 정도이며, 관우가 뛰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드는 예로는 번성 전투가 있으나 결국 형주 전체를 잃었다.
2. 관우는 왜 만인지적인가?
일부 순위매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관우의 무가 정말 뛰어난 것이 맞는지 의문을 던진다.우선 소설에서는 일기토가 자주 나오는데 반하여 실제 정사에서는 일기토가 거의 없다.
그러나 관우가 대단한 이유는 연의의 내용이 실제 정사에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관도 대전에서 안량이 있는 곳까지 단신으로 뚫고 들어가 안량의 목을 가져온다.
실제 정사에서는 추가로 '상당히 많은 병사들 사이에 있는'이라는 설명까지 달아준다.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의 평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관우의 무에 대해서는 딱히 잡설을 붙이지 않아도 대단한 장수였다.
3. 제갈량과는 사이가 정말 좋지 않았을까?
유비가 제갈량을 데려온 이후로 제갈량과 함께 다니는 것을 즐기자, 장비와 관우가 불만을 품고 저런 서생을 귀히 대접하는지 유비에게 물었다.그러자 유비는 '나와 제갈량은 물과 물고기 같은 관계이다.'라며 제갈량의 소중함을 표현했다.
이는 수어지교의 고사이며, 여기서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을 탐탁치않게 생각한다는 뉘앙스를 비춘다.
물론 이것은 연의의 창작이다.
실제로 관우와 제갈량의 정치적 관점에서 대립을 보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제갈량은 촉한 내에서 대표적인 친오파였고, 관우는 오나라에 강경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입장에서 그랬을 뿐 실제로는 개인적인 편지까지 주고 받았으며 제갈량은 관우에게 미염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서 불렀을 정도다.
4. 간단히
관우가 이렇게 신격화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의리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비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비의 처자식을 챙겨 보살폈으며, 조조에게 엄청난 대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비의 거처를 알자 모든 것을 버리고 유비에게 떠난 것이다.
이는 부모와 형제마저도 버리는 난세에, 입으로 떠드는 '의'가 아닌 진정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기에 더 큰 충격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유교의 맥락과 어울려 유교적 사회에서 관우의 행동은 더욱 빛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5. 장비
영화 적벽대전에 등장하는 장비의 모습이다.
고래로 장비의 모습은 저와 다를 바 없었다.
밤송이처럼 뻗힌 수염, 큰 눈과 짙은 눈썹으로 표현된다.
연의의 묘사대로 장비를 그리면 불교의 사대천왕과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실제로 상당히 닮은 모습이다.
1. 연의의 장비는 정사에서의 장비를 얼마나 반영하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연의에서의 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사와는 전혀 딴판이다.
다시 말하면 연의의 장비는 실존했던 장비의 이름만 갖다 썼을 뿐 100% 창작된 허구의 인물이라는 말이다.
먼저, 험상궃은 외모.
정사에서 장비의 외모에 대해 왈가왈부한 적은 없으나 장비의 딸이 상당히 아름다웠다고 한다.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장비의 딸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거꾸로 생각하면 장비의 외모도 상당히 준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딸이 못생겼다면 아무리 개국공신의 딸이라도 황후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두 명 모두 말이다.
다음은 일자무식 + 군략도 모르는 장수에 대한 이미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삼국지 정사에서 장비만큼 완벽한 장수도 없다단언컨대, 장비는 가장 완벽한 장수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관우와 함께 만인지적으로 불렸을 뿐더러, 군략으로 위나라의 명장인 장합을 한중에서 관광시켜 버린다.
더욱 대단한 것은 장합 군세에 비해 군사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산길에서 앞뒤로 포위한 뒤 쌈싸먹어 버린 것.
엄안을 사로잡는 부분도 연의에서는 소가 뒷걸음치다 쥐잡는 것마냥 설명했지만 그럴 능력이 이미 충분했던 장수였다.
연의에서는 초반에 술에 취해 하비성을 빼앗기는 부분마저도 창작이라고 쓰고 날조라고 읽는다이며, 상관인 조표가 여포와 내통했기 때문에 성을 빼앗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정 이미지.
연의에서는 푸줏간을 하며 고기를 팔았다고 하는데, 상인 집안이긴 하나 백정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잘 나가는 상인 집안으로 상당한 교육까지 받았으며, 사대부로써 군자를 우러르고 예를 따랐다고 한다.
오죽하면 동시대 촉에서 벼슬했으며 삼국지를 쓴 진수가 '국사의 풍도가 있었다'는 평을 했을까?
실제 성격에 대해서는 정사에 기록된 바 없으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2. 장비는 로리콘이었을까?
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위략의 기록이다.
서주에서 세력을 잃고 여남을 떠돌 때, 땔나무를 주우러 온 여아를 보고는 납치해서 겁탈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바로 '장비는 로리콘이다'라는 설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록된 사서가 위략이라는 것이다.
위략은 촉에 대해 상당히 나쁘게 적어놔서 그 진실성을 의심받는 사서이기도 하다.
위략의 기록이 얼마나 허황된지 알 수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선 벤허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위략에서 말하는 저 시기에 하후연은 진류 태수로 있었다.
하후연이 맡아서 기르는 아이가 어떻게, 그리고 왜 여남까지 가서 땔나무를 주웠는지는 미스테리이다.
판단은 스스로 해보시기 바란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사에서는 연의와 달리 문무를 겸비했으며, 얼굴까지 잘 생긴 완벽한 엄친아의 표본이다.
그러나 오히려 완벽하지 않고 언제나 실수만 저지르는좋은 의도로 했지만그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형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 막내 동생같은 이미지로 인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만약 삼국지연의의 장비의 모습이 정사와 마찬가지로 엄친아의 모습이었다면 장비가 이런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비록 연의에서의 모습으로 인해 정사에서의 장비의 모습은 없더라도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은, 나관중의 창작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